문해력이 학습의 바탕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교과서를 읽고, 질문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정리하는 모든 과정이 결국 문해력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해력은 국어나 사회 같은 언어 중심 교과뿐 아니라, 수학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이후, 초등 수학에서는 ‘문장 속에서 수학적 관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 교과서에 수록된 문제들은 대부분 계산식 이전에 상황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숫자보다 먼저, 아이는 문장을 읽고 문제의 조건과 관계를 해석해야 합니다. 연산을 잘해도 문제를 자꾸 틀린다면, 그 시작은 문장에서 막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아이, 연산은 잘하는데 왜 틀릴까요?
연산만 하는 문제지를 주면 100점을 척척 맞는 아이가, 문장형 수학 문제를 풀 때는 틀린 답이 유독 많다면, 그것은 아이의 연산 능력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해당 문제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수는 읽었지만, 문장 속 관계는 놓친 채 연산부터 시작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영민이는 동화책을 42쪽 읽었고, 지희는 영민이보다 2쪽 더 많이 읽었습니다. 영민이와 지희가 읽은 동화책은 모두 몇 쪽인가요?”
이때, 많은 아이들이 42 + 2 = 44라고만 답합니다.
문장의 마지막 문구인 ‘모두 몇 쪽’이 요구하는 전체 합을 보지 못하고, 앞부분의 ‘2쪽 더’에만 집중한 결과입니다.
이런 오류는 연산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문장을 끝까지 해석하지 않고, 중간 정보만으로 연산을 시작할 때 생깁니다. 문제를 읽고 곧바로 수를 처리하는 습관 때문에, 해석은 빠지고 연산만 남는 겁니다.
아이들은 문장을 어디에서 놓칠까요?
문장형 수학 문제에서 아이들이 틀리는 이유는 단순히 낯선 어휘나 긴 문장 때문만은 아닙니다. 문제를 이루는 문장의 구조 자체가 관계나 순서를 바꾸어 읽게 만들거나, 연산 방향을 흐리게 하거나, 숨어 있는 기준을 놓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사례들은, 아이들이 ‘문장을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해석은 끝까지 가지 않은’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연산 방향을 바꾸는 문장 구조
“어떤 수에서 17을 빼면 42입니다. 어떤 수는 얼마인가요?”
이 문제는 실제로는 42 + 17을 해야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42 – 17을 시도합니다. ‘~을 빼면’이라는 표현에 반응해 곧장 뺄셈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단순한 식으로 역연산이 주어졌을 땐 잘 해결하지만, 문장으로 주어졌을 때는 그 관계를 다시 구성해야 하므로 사고가 멈추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연산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문장 해석이 연산 방향을 흐리는 구조인 것입니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해석하지 못한 경우
“전체 장미의 8분의 1인 5송이가 시들었습니다. 시들지 않은 장미는 몇 송이인지 구해 보세요.”
이 문제는 ‘5송이 = 전체의 8분의 1’이라는 관계를 바탕으로 전체를 먼저 구한 뒤, 남은 양을 계산해야 합니다.
따라서 전체 장미는 8 × 5 = 40송이, 시들지 않은 장미는 40 – 5 = 35송이가 됩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전체 장미를 파악해내는 아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고, 대부분 8 ÷ 5나 8 – 5처럼, 문장 속 수를 단순하게 연산에 끌어다 씁니다. 분수 개념은 배웠지만, 문장 안의 수 관계를 전체 – 부분으로 구조화하는 사고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겁니다.
문제를 풀게 하지 말고, 문장을 따라가게 도와주세요
문장형 문제를 풀 때, 많은 아이들은 문제를 끝까지 읽지 않고 중간에서 떠오른 수에 곧바로 연산을 시작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습관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정답을 맞히는 경험을 반복하며 굳어집니다. 아이 스스로 그 구조를 되돌아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문장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해석하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교실보다 집에서, 연산 연습보다 말로 지도할 때 훨씬 잘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전체 장미의 8분의 1인 5송이가 시들었습니다. 시들지 않은 장미는 몇 송이인지 구해 보세요.”라는 문제가 있다면, 부모는 바로 연산을 시키기보다 이렇게 묻는 것이 좋습니다.
“시든 장미가 몇 송이라고 했지?”
(→ 아이가 ‘5송이’라고 답하도록 유도)
“그럼 전체 장미는 몇 송이일까?”
(→ 아이가 막히면)
“8분의 1이라고 했으니까, 여덟 묶음 중에 한 묶음이 시든 거네?
그 한 묶음이 5송이면, 여덟 묶음은 몇 송이야?”
이렇게 한 문장씩 따라가며, 숨어 있는 관계와 전체 구조를 언어로 조립해주는 과정이 아이에게는 ‘읽으면서 해석하는 수학적 사고’를 익히는 계기가 됩니다. 정답에 도달하는 것보다, 문장을 해석해 가는 과정을 말로 안내해주는 일이 먼저입니다.
문해력이 완성되어야 수학도 시작됩니다
문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문제풀이를 아무리 반복해도 실수가 줄지 않습니다. 연산은 훈련으로 늘 수 있지만, 문제를 이해하는 힘은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는 연습을 통해서만 길러집니다. 문제를 ‘읽는다’는 건 단지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문장이 말하는 조건과 관계를 구조화하고, 어떤 수를 기준으로 어떤 상황을 풀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초등 수학은 연산보다 먼저, 언어로 풀어가는 사고 훈련입니다. 문장을 따라가며 관계를 이해하고, 수의 의미를 판단하는 힘이 자리를 잡을 때 아이의 수학은 풀이가 아닌 이해로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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